말랑말랑
2016. 9. 10. 14:52뉴스의 시대

 

 

'인류의 절반이 매일 뉴스에 넋이 나가 있다'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언론을 통해 결코 접할 수 없는 헤드라인이다. 뉴스가 가지고 있는 사실(본질)이지만 그 사실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는 뉴스 자신에 대한 뉴스를 생각해보자.

1) 정치뉴스

* 지루함과 당혹스러움

  독자를 지루하게 하고 당혹스럽게 한다. 독자를 긴 이야기 속 아무데나 빠뜨렸다가 다시 재빨리 꺼내면서도 사건이 전개돼온 더 넓은 맥락에 대한 설명을 생략한다. 너무 가까운 위치에서 그림을 들여다 보게 하고, 대체 이 선들은 뭐지라고 생각하고 돌아서게 한다. '진지한' 기사이지만 독자가 '진지하게' 받아들일만한 장치를 제공하지 않는다. 공정하고 중립적인 '사실'보도가 품격있는 저널리즘이라는 편견에서 사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뉴스는 기본적으로 밖에서 벌어지는 일을 설명하는 한 묶음의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뉴스가 제고하는 국에 대한 소식들이 국가 그 자체는 아니다.


* 두려움과 분노

 우리의 두려움을 부채질하는데, 뉴스는 잔인하게도 원근감에 대한 우리의 나약한 지각 능력을 악용한다. 만약 대부분의 일들이 대체로 좀 실망스러운 것으로 밝혀진다고(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변화란 천천히 일어난다고 (하지만 인생도 길다고) 여긴다면, 사람들 대부분이 완전히 선하지도 아주 사악하지도 않다고 (그리고 우리도 거기 포함된다고) 생각한다면, 인류는 산 넘어 산처럼 위기에 맞닥뜨린다고 (그래도 그럭저럭 살아간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말해 우리가 참으로 명백하지만 무척이나 사라지기 쉬운 이런 생각들을 계속 생생히 마음에 품을 수 있다면, 우리는 공황 상태에 쉽게 빠져들지 않는다.

 뉴스는 무척이나 무척이나 절묘하게도 어떤 결정을 '어렵다'고 일컫게 되는 진짜 이유로는 우리를 인도하지 않는다. 대신 뉴스는 현재 진행중인 모든 문제들이 그저 엄청난 게으름과 어리석음 혹은 악의의 결과일 수 있다고, 지적이고 독창적인 누군가가 비교적 단호하게 그냥 몇 걸음만 내디뎠으면 해결될 수 있었다고, 우리가 점증하는 분노에 휩싸인 채 그렇게 추측하도록 놔둔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한 사람이나 한 정당이 단숨에 성취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이다.

 뉴스는 완벽한 세상이 존재 가능하다고 상정하는데, 이 세상은 항상 솓 뻗은 거의 닿을 곳에 있는 듯 해도 정치적 변화 과정의 매 단계마다 신기하게도 손아귀에서 미끄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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